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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30, 2010

August 9 Memorial for Korean A-bomb Victims in Nagasaki 8月9日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조집회 메시지

Below is the keynote speech by Dr. Takazane Yasunori, Director of Oka Masaharu Memorial Nagasaki Peace Museum, and Chair of the Nagasaki Association for Protecting Human Rights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at the early morning memorial gathering for the Korean victims of the Nagasaki atomic bomb, on August 10, 2010. Our Hiroshima/Nagasaki Peace Tour group always visits this memorial that starts at 7 a.m., before we visit the Shiroyama Elementary School memorial and Nagasaki City's main ceremony. The photo above is the monument for the Korean victims, located at Nagasaki Atomic Bomb Hypocenter Park.

The monument was built in 1979 with donations collected by the Nagasaki Association for Protecting Human Rights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and since then, a gathering in memory of the Korean victims has been held in front of the monument every year, to remember and to pay tribute to the over 20,000 Korean victims of the atomic-bombing of Nagasaki, and over 10,000 who were killed. This is the fourth year that I attended the ceremony, and I had an impression that the crowd was particularly large this year, perhaps around 400 people, compared to 200 or so for the previous years. This could be related to the fact that this year marks the 100th year of Japan's annexation of Korea, and the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a Korean national, visited both the Korean memorials in Nagasaki and Hiroshima.

The speech is available in Japanese and, for the first time, in Korean this year. Takazane takes months to prepare for this August 9 speech every summer, and the speech of this year places specific emphasis on the 100th year of Japan's forceful annexation of Korea. To summarize the main points, Takazane called for Japan and its people to recognize the Korean victims of the atomic bombing, not just as victims of a nuclear weapon, but also as victims of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and Japan's invasive war in Asia. He stressed the illegality and unjustifiability of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of 1910. He pointed out there is crucial lack of consciousness in Japan about their responsibility for the division of Korea, and condemned the Japanese government for continuing to implement policies that reinforce the division and hostility in Korean Peninsula. He also criticized the Japanese government's continued alienation and discrimination against Korean residents in Japan, particularly their exclusion of Korean schools from the tuition subsidy program for high school students. Referring to the unresolved issues of the military sex slavery and forced labour, he called for the government to legally recognize the responsibility for and provide individual compensation to the Korean war victims.

Takazane concluded his speech with the set of five demands to the Japanese government: 1)to declare the 1910 annexation treaty null and illegal; 2)to pave the way for the Atomic Bomb Victims' Relief Law to be applied to the victims living in DPRK(North Korea); 3)to recognize the right to request compensation by individual victims of Japan's war, and to establish a "war reparations law"; 4)to include Korean high schools in the tuition subsidy program, and to waive tuition for the Korean elementary and junior high schools as well; 5)to resume a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DPRK.

Here is the speech, first in Japanese then in Korean.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この長崎の街に原子爆弾が投下されて六五年目の今日、私たちは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の前に集いました。半世紀を超える歳月が流れたとはいえ、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に思いを馳せずにはいられないからであります。絶対悪である核兵器を使用した米国の責任は人類史上永遠に追及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駐日大使が広島の平和記念式典に参加したとはいえ、法的責任も道義的責任さえも認めず、ただ大量殺戮兵器としての脅威にのみ着目している現状は言語道断であります。しかしながら、原爆の投下責任を糺し、原爆の悲惨さと核兵器廃絶を訴えるだけで核時代を生きる私たちの使命は果たせるといえるでしょうか。私はそこにもエゴイスティックな思考が隠されていると思えてなりません。なぜならば、朝鮮人原爆犠牲者は核兵器の犠牲者であるばかりではなく、日本の朝鮮侵略とアジア侵略戦争の犠牲者でもあるからです。日本国民は自国のこの加害責任を深く心に刻み、反省と謝罪と賠償を怠ってはなりません。

 日本が朝鮮を侵略しなければ、朝鮮人が原爆の犠牲になることもありえませんでした。韓国強制併合から一〇〇年、「保護条約」から一〇五年の今年、日本国民はこれらの「条約」がいかに暴力的な威圧と欺瞞に満ちた不法なものであったかをどれほど認識しているでしょうか。「併合条約」の第一条と第二条をみるだけでもその欺瞞は明らか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日本政府をはじめ多くの国民も「合法的に交わされた有効な条約」と信じ込んでいる現実があります。第一条「韓国皇帝陛下は韓国に関する一切の統治権を完全かつ永久に日本国皇帝陛下に譲与す」。第二条「日本国皇帝陛下は前条にかかげる譲与を承諾しかつ全然韓国を日本帝国に併合することを受諾す」。韓国皇帝が統治権を譲与すると申し出たから承諾して併合するのだという。欺瞞であるのみか、これほど他国を侮辱した「条約」がありうるでしょうか。当初から不法・無効であることは明らかです。

 また、私はこの不法な「併合条約」のもとで断行された無数の暴虐に目を向けるのみならず、侵略を賛美し推進した思想的背景にも着目しなければ、原爆犠牲者の無念も暴虐の犠牲者の無念も決して癒されることはないと思います。「取り易き朝鮮・満州・支那を切り随え・・・」と弟子たちに説いた吉田松陰や、「朝鮮は腐儒の巣窟、上に磊落果断の士人なくして、国民は奴隷の境遇・・・斯かる軟弱無廉恥の国民・・・脅迫と決したる上は国務の実権を我手に握り、韓人等は単に事の執行に当たらしむるのみにして、・・・喙を容れしめず・・・」と、偏見をほしいままにして脅迫による支配までも鼓吹した福沢諭吉の侵略思想はどれほど認識され、反省されているでしょうか。福沢諭吉が最高紙幣の肖像であるところにも、反省はおろか、偉人として崇拝している現実がある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侵略思想の大罪を告発し、二度とその轍は踏まないと誓うことこそ、犠牲者を追悼する私たちの責務であると信じます。

 日本は朝鮮の南北分断をもたらした根源的責任も問われます。日本の侵略がなければ朝鮮の分断はありえないからで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戦後日本は分断を煽り、統一を阻害する政策を一貫して執り続けました。昨年の政権交代によってもこの政策を見直す気配はありません。私は南北融和から再び対立の傾向を濃くしている情況に憂慮の念を禁じえませんが、日本政府が相変わらず対立を助長する政策に終始していることに失望と義憤を覚えます。南北分断の根源的責任の自覚が完全に欠如しているからです。対立に拍車を掛けるこの無責任な態度は内政にも見られ、朝鮮学校の存在と民族教育を露骨に敵視しています。本来無償であるべき初等中等教育から朝鮮学校を排除して国費を一切支給せず、ましてや新たに実施された高校無償化から朝鮮高級学校を排除して平等待遇を拒むとあっては人権侵害に他ならず、世界から指弾されて当然であります。国連機関から差別撤廃を勧告され、韓国の言論界からも強く批判されています。日本政府は一刻も早くこの恥ずべき差別待遇を放棄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日本軍「慰安婦」問題と強制連行問題をはじめ、未解決のまま今日に至っている問題も忘れてはなりません。国家間の戦後処理で「解決済み」とすることは許されません。国家といえども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を奪う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の叫びに応えるためにも、私は次の五点を日本政府に強く要求します。皆さんの賛同を得られれば幸いです。

一、 「韓国併合条約」は当初から不法・無効であることを宣言すること
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在住の被爆者に被爆者援護法適用の道を開くこと
一、 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を認め、抜本的「戦後補償法」を制定すること
一、 朝鮮高級学校の無償化に加え初級中級学校の国費による無償化を図ること
一、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との国交正常化を実現すること

 最後になりましたが、日本軍「慰安婦」問題や遺骨の返還運動に全力を注ぎ、韓国政府の「日帝強占下強制動員被害真相糾明委員会」の任務にも日本との懸け橋となってかけがえのない貢献をされた福留範昭氏の急逝に衝撃と哀しみを抑えることができません。同委員会の調査員と共に長崎にも度々来られた氏の面影を偲び、偉大な思想と実践に深く思いをいたしながら、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の前で哀悼の誠を捧げたいと存じます。

   二〇一〇年年八月九日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  高 實 康 稔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 조조집회 메시지

이곳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65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도비 앞에 모였습니다. 반세기를 넘는 세월동안 풀리지 못한 조선인 원폭 희생자의 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악인 핵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책임은 인류사상 영원히 추궁당해야 마땅합니다. 주일 미국대사가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전에 참석했다고는 하나, 법적인 책임이나 도의적인 책임도 인정하지 않은 채, 단지 대량학살무기의 위협에만 주목하고 있는 현상은 언어 도단입니다. 그러나 원폭투하의 책임을 규명하고 원폭의 비참함과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는 것만으로 핵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완수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도 이기적인 사고가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인 원폭 희생자는 핵무기의 희생자일뿐 아니라 일본의 조선침략과 아시아 침략 전쟁의 희생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민은 자국의 가해 책임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기며, 반성과 사죄와 배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조선인이 원폭에 희생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 강제병합 100년, (을사)'보호조약'으로부터 105년이 흐른 올해, 일본 국민은 이들 '조약'이 얼마나 폭력적인 위압과 기만으로 가득찬 불법인가를 얼만큼 인식하고 있을까요. '병합 조약' 제1조와 2조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만성은 명백하지만, 일본정부를 시작으로 많은 국민이 '합법적으로 체결된 유효한 조약'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제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 조항에서 제기한 양여를 승낙하며, 한국을 완전히 일본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수락한다." 즉, 한국 황제가 통치권을 양여하겠다고 스스로 요청했기 때문에 그것을 승낙하여 병합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기만일 뿐 아니라, 이 정도로 타국을 모욕한 조약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조약은 당초부터 불법・무효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또한 저는 이 불법적인 '병합 조약' 아래 단행되었던 수많은 포학 행위에도 관심을 갖되, 침략을 찬미하고 추진했던 사상적 배경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폭희생자의 원통함도, 잔인한 학대에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한(恨)도 결코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빼앗기 쉬운 조선・만주・지나(중국)를 정복하고・・・"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나 "조선은 부패한 유학자들의 소굴・・・위로는 도량이 크고 결단성 있는 선비가 없으며, 백성들은 노예의 처지・・・이러한 연약하고 염치가 없는 국민・・・협박한다고 결정한 이상은 국무 실권을 우리 손에 잡아, 한인 등은 단순히 일의 집행만 맡게 하고・・・참견하지 못하게 하여・・・"라는 등 제멋대로 편견을 들이대, 협박에 의한 지배마저 고취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침략사상을 우리는 얼만큼 인식하고 반성하고 있을까요.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 엔화의 최고 화폐인 1만엔 짜리 지폐의 인물이라는 점은, 반성은커녕 그를 위인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일본의 현실을 뒷받침합니다. 침략사상의 대죄를 고발하고, 두 번 다시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를 추도하는 우리의 책무임을 믿습니다.


일본은 한반도의 남북 분단을 초래한 근원적인 책임도 추궁당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조선의 분단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일본은 오히려 한반도의 분단을 부추기고, 통일을 저해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 왔습니다. 지난해 정권교체에 의해서도 이 정책을 재검토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남북이 화해의 흐름에서 다시 대립 국면으로 기울어가는 정황에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만, 일본정부가 변함없이 대립을 조장하는 정책을 시종일관하고 있다는 점에 실망과 의분을 느낍니다. 남북분단의 근원적 책임에 대한 자각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립에 박차를 가하는 이 무책임한 태도는 내정에서도 엿볼 수 있어,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의 존재와 민족교육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본래 무상이어야 할 초중등교육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고 국비를 일체 지급하지 않으며, 또한 새롭게 실시된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도 조선 고급학교는 베제해 평등한 대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권침해와 다름없으며, 세계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유엔기관도 차별 철폐를 권고하였으며, 한국의 언론에서도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조속히 이 부끄러운 차별대우를 포기해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연행 문제를 시작으로 하여, 오늘 이 시점까지도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문제 역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간의 전후 처리로 '해결 완료'라고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국가라 해도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박탈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인 원폭 희생자의 한맺힌 절규에 응답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섯 항목을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여러분이 찬성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한국 병합 조약'은 당초부터 불법・무효라는 것을 선언할 것.
1.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피폭자에게 피폭자 원호법 적용의 길을 열
것.
1.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근본적인 '전후 보상법'을 제정할 것.
1. 조선 고급학교 무상화와 더불어, 초중급 학교의 국비에 의한 무상화를 꾀할 것.
1.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할 것.


마지막이 되었습니다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유골 반환 운동에 온힘을 다했으며, 한국 정부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측 위원회와 일본을 잇는 가교가 되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공헌을 했던 후쿠도메 노리아키(福留範昭)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과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강제동원진상규명 위원회) 조사원들과 함께 나가사키에도 몇 차례 방문하였던 후쿠도메 씨의 모습을 그리며, 그 위대한 사상과 실천에 마음 깊이 생각을 옮겨 봅니다. 조선인 원폭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진심으로 애도의 마음을 올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8월 9일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다카자네 야스노리(高實康稔)

Sunday, February 06, 2011

Historical Understanding to Combat Nationalism: Takazane Yasunori ナショナリズムに負けない歴史認識を 高實康稔

Takazane, giving keynote speech at the
memorial for Korean victims of Nagasaki
A-bombing, August 9, 2009
This is the prefatory article "Historical Understanding to  Combat Nationalism," in the January 1, 2011 issue of Nishizaka Dayori, newsletter of Oka Masaharu Memorial Nagasaki Peace Museum, by the museum's Director Takazane Yasunori. The article warns excessive nationalism in Japan, especially in its mass media, calls on them to deal with the territorial conflict over the southernwest islets called Diaoyu in China and Senkaku in Japan, with historical  understanding of Japan's past aggression against China. Oka Masaharu Museum helps visitors learn about Japan's acts of invasion and aggression during the war, such as forced labour, sex slavery, Nanjing Massacre, and Unit 731, and the struggles of Korean a-bomb victims.

For past articles in this blog about Takazane, Oka Masaharu Museum, and the annual memorial for Korean victims of Nagasaki atomic bomb, see this LINK.


ナショナリズムに負けない歴史認識を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理事長 高實康稔


「中国に親しみを感じる」が激減

ナショナリズムの高揚が平和を脅かし、友好関係を阻害するだけではなく戦争の原因とさえなりうることは歴史上数えきれない実例あり、論ずるまでもありません。しかし、このナショナリズムに対する警戒感は国際社会において未だに不充分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日本もその例にもれず、近隣諸国との摩擦が生じる度に、ナショナリズムが高まる傾向を否定できません。最近では、尖閣諸島周辺での中国漁船の巡視船衝突事件を契機に、反中国感情が急激に高揚しています。2010年10月に実施された内閣府の世論調査で、「中国に親しみを感じる」とする回答は昨年の調査より18.5ポイントも減じて20.0%となり、「親しみを感じない」は19.3ポイント増の77.8%に上り、過去最高だったと発表(同年12月18日)されています。この調査結果に対して外務省は「9月の中国漁船衝突事件で日中間の緊張が高まり、国民感情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と分析しているとのことです(各紙報道参照)。

尖閣諸島の領有権宣言は日清戦争のさ中

中国漁船の衝突事件が尖閣諸島の領有権に絡む問題であることは明らかです。「尖閣諸島は日本の領土であり、領土問題は存在しない」と表明した日本政府に対し、中国政府は「中国の神聖な領土」と反発し、日中関係が一挙に緊張しました。激しい攻防の過程で、国民は「尖閣諸島は1895年に日本の領土に編入された」という報道記事にも接したはずです。近代史の流れを概略でも理解していれば、1895年と聞くだけで日清戦争を想起し、「日本の領土」に不透明感を抱いたに違いありません。事実は日清戦争中の同年1月に領土編入を閣議決定したものでした。すなわち、中国名を釣魚島と称し、それまでは日中帰属の不明確な小島でしたが、日本の戦勝とともにその閣議決定が既成事実と化したのです。

ナショナリズムに弱いマスメディア

不思議なことに、この歴史的経緯を解説する報道記事は皆無に近く、多くの国民は衝突漁船の過激な行為にのみ目を奪われました。日本が実効支配している海域での事件であり、故意の衝突という漁船の不法行為が批判されるのは当然としても、海域をめぐる帰属問題が冷静かつ客観的に論評されない現実はマスメディアの責任放棄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本来マスメディアはナショナリズムと関連する事柄にも逃避することなく積極的に発言する責務があるからです。因みに、竹島(韓国名は独島)を日本が「領土宣言」したのは1905年のことであり、日露戦争後の第2次日韓協約(保護条約)によって統監府を置き、植民地化をほぼ完成した時期と重なりますが、日本の領有主張に対する抗議行動の報道はあっても、帰属問題を両者の主張に基づいて詳しく論評した報道記事を目に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これでは徒にナショナリズムを刺激するばかりです。

古来共通の魚場

日清戦争によって日本の植民地となった台湾が尖閣諸島の領有権を主張するのも自然なことと思われます。また、この海域は日本が領土編入を宣言する以前、古より沖縄(琉球)、台湾、福建省の漁民たちの共通の魚場であったことにも思いを馳せるべきです。

歴史認識の深い溝が日中間に潜在

漁船衝突事件後に中国で相次いだ抗日デモに不快感を覚えた人も多いことでしょう。しかし、一隻の漁船の巡視船衝突事件が両国の国民感情を刺激し、重大な外交問題にまで発展すること自体尋常ではなく、その原因がどこにあるのかを考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一言で言えば、それは歴史認識に深い溝があるからだと私には思えます。暴虐をきわめた中国侵略の歴史が共通認識とならないまま、いわば未清算の状態にあることが中国国民に反日感情を抱かせる潜在的な原因であるといって過言ではないでしょう。日本の首相の靖国神社参拝は反日感情に火をつけました。731部隊の生体実験という背筋も凍る戦争犯罪でさえ、日本政府は未だに認めてはいません。また例えば、国交を回復させた「日中共同声明」(1972年)で、中国が「中日両国国民の友好のために、日本国に対する戦争賠償の請求を放棄」した寛大な決断を認識している日本人は少なく、逆にその決断を逆手に取り、日本の最高裁判所が、中国人強制連行裁判において、中国国民の戦時損害賠償請求権は消滅したとして「裁判上訴求する権能を失った」と判決(2007年4月27日)したのも未清算の最たる証拠です。日清戦争の賠償金として清国の年間予算の3年分にも相当するという2億両を支払わせたことを思うとき、日中戦争の賠償請求を放棄した中国の「以徳報怨」の精神を日本国民は決して忘れてはなりません。正しい歴史認識をもつことによって、戦争はもとより、ナショナリズムの高揚をも根底から阻みたいものです。

永井隆が南京にいた?

一言付け加えたいことがあります。先日12月12日に行なわれた「南京大虐殺生存者証言長崎集会」で、「南京で軍医として治療に当たった永井隆が虐殺について何も書いていないので、大虐殺は事実無根ではないか」という趣旨の発言がありましたが、永井隆は第5師団所属で当時南京にはいませんでした。いかなる疑問や問題提起も事実を前提にしなければ欺瞞のそしりを免れません。また、こうした発言の背後にも歴史認識の溝が垣間見えるといえるでしょう。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は長崎の観光名所、二十六聖人殉教地のすぐ近くにあります。日本の帝国主義と軍国主義の歴史、朝鮮人・中国人の強制労働や日本軍性奴隷、南京大虐殺や731部隊、朝鮮人被爆者など、日本の学校では十分に教えない、または全く教えない重要な歴史について学べる場所です。上記の記事は資料館の会報「西坂だより」2011年1月1日号の巻頭言として掲載されたものです。

Friday, September 04, 2009

Dr. Yasunori Takazane's Speech on August 9, 2009, in Nagasaki 2009年8月9日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Dr. Yasunori Takazane, Director of Oka Masaharu Memorial Nagasaki Peace Museum, also represents the Association for Advocating Human Rights of the Zainich Koreans in Nagasaki. Every year on the early morning of August 9th, Dr. Takazane gives a keynote speech at the memorial ceremony held in front of the monument for Korean A-bomb victims in Nagasaki. Here is Dr. Takazane's speech on August 9, 2009. This is in Japanese only, but hopefully we will post the English and Korean versions or summaries soon. We, the group of Ritsumeikan University, American University, and Canadian university students attended this early morning ceremony.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今日八月九日、私たちは爆心地公園に集い、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の死に思いを馳せています。造船所で、兵器工場で、製鋼所で、そして至るところでの土木工事で炎天下裸同然で強制労働を強いられていた朝鮮人は二万数千人を数え、一万人余が犠牲となりました。懐かしい故郷の山河から遠く長崎まで強制連行され、日本の侵略戦争と米国の原爆投下の犠牲となった恨(ハン)は国を奪われた民としてどれほど大きかったことでしょう。肉親を思い、生きて帰りたかった心情にどれほど思いを馳せても足りません。無差別大量虐殺である核兵器の使用は人類への敵対行為であり、永遠に批判さ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かし、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の死を思うとき、私は徐正雨(ソ・ジョンウ)さんの言葉を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彼は一四歳で強制連行され、原爆に遭い、原子野の惨状のなかで死体や瓦礫の処理を命じられましたが、「原爆でも落とさなければ日本は戦争を止めなかったでしょう」と幾度も言われました。戦後は入退院を繰り返す病弱の身で、被爆がその直接的な原因であったにせよ、炭鉱や造船所での強制労働が人生を台無しにした真の原因であることを見逃さなかったのです。「原爆も差別を焼き尽くさなかった」とも言われました。二〇〇一年八月二日、七二歳で病死されたとき、侵略と差別を告発し続けた氏の願いが達成されなかったことを日本国民の責任として恥じずにはいられませんでした。

 被爆から六四年を経過した今日、日韓、日朝関係を顧みるとき、現状の把握と今後の方向について見解が大きく分かれ、予断を許さない事態に直面しております。しかし、日本の戦後が朝鮮侵略の反省の上に立ったものでなかったことは明白であります。韓国併合を合法と開き直り、南北分断に侵略の自己責任を認識することさえなく、冷戦構造を逆手に取って分断の固定化に狂奔したといって過言ではありません。とりわけ日朝関係においては終始敵視政策を取り、南北融和にも冷淡な視線を送り、未だ国交さえ持ちえない状態を是認しております。六カ国協議が査察問題をめぐって暗礁に乗り上げたのも、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以下、朝鮮共和国と言います)に対する日本政府の敵視政策の結果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オバマ政権の誕生とともに朝米関係の好転が期待されたものの、朝鮮共和国の人工衛星発射を<ミサイル発射>と決めつけ、国連および日本独自の制裁強化に走ったために、朝鮮共和国は再核実験に踏み切りました。ただならぬ事態に衝撃は大きく「いかなる理由があろうと許されない」という批判が渦巻いています。しかし、核保有国や「核の傘」に頼っている側からのこうした批判にどれほど説得力があるでしょうか。私は朝鮮共和国が繰り返し表明している「朝鮮半島の非核化」という目標にこそ着目し、この目標の実現に世界は一丸となって努力すべきだと考えます。残念ながら現実は朝鮮共和国を一方的に非難し、この目標を遠ざける方向へ動いています。とりわけ日本政府は独自の制裁措置を強化して、敵視政策を露骨に推進し、武力衝突をも辞さない態度であることは明らかです。またメディアの論調もほぼ全面的に制裁論に塗りつぶされ、客観報道と冷静な論評という使命を放棄した事実は、かつての大政翼賛を想起させる異常な事態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そもそも六カ国協議とは何だったのでしょうか。「相互尊重と平等の精神」を謳った「朝鮮半島非核化のための共同声明」(二〇〇五年九月)を蹂躙したのは誰でしょうか。原子炉の稼働を停止し、使用済み核燃料棒の再処理を中断した朝鮮共和国の合意に満足せず、二国間で解決すべき拉致問題を持ち込んで「行動対行動の原則」を守らず、非核化に焦点を絞った協議の進展を妨げたのは日本に他なりません。国連安保理の「議長声明」や「決議」による制裁を米国と一体となって強力に推し進めたのも日本であり、自らは米国の「核の傘」に安住して常時多数のミサイル発射が可能な態勢を堅持しながら、国際法を順守した人工衛星の発射さえも<ミサイル発射>と決めつけて単独制裁まで加えたのは、朝鮮共和国の反発を見越した挑発行為といって過言ではありません。ここには明らかに冷戦構造が存在します。この冷戦構造を脱却するには「敵対より対話」の道を選択する以外にありません。そして、この道を真剣に追求するならば、東北アジアの非核化も実現することができるものと確信します。この危険な冷戦の原因は朝鮮共和国に対する日米の敵視・挑発行為にあることをしっかりと認識する必要があります。オバマ大統領のプラハ演説が歓迎されている反面、米朝関係に関するかぎりオバマ・クリントン路線はブッシュ政権末期よりいっそう好戦的・挑発的であり、私は深く失望しました。この状況下にあって、このほど朝鮮共和国はクリントン元大統領の訪朝を受け入れ、拘束中の二人の米国人記者を特赦・解放しました。私はこの決断を高く評価するとともに、オバマ政権がこれを機に敵対姿勢を明確に転換して米朝関係を抜本的に正常化することを切望してやみません。それこそが冷戦に終止符を打ち、東北アジアの平和と安定を構築する絶対条件だからです。

日本の制裁措置は在日朝鮮人を標的にした数々のあからさまな人権侵害を引き起こしており、人道上も批判を免れません。加えて、再核実験後の輸出全面禁止に伴い、祖国の親類縁者への郵送物まで差し止めるに至っては「いじめ」以外の何物でもなく、憲法違反は言うに及ばず、日本という国の品格が問われる由々しき事態であります。日本の核武装論や先制攻撃論を許してはならないのと同時に、迫害にも等しいこうした人権侵害を許さない日本の政治と社会の建設が、現代を生きる私たちに課せられた責務であると痛感せずにはいられません。

私は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に応えるためにも、次の三点を日本政府に強く要求します。皆様のご賛同をいただければ幸いです。

一、朝鮮共和国に対する敵視政策を撤回し、日朝ピョンヤン宣言に基づき、過去の清算と日朝国交正常化に早急に取り組むこと

一、朝鮮共和国に対する制裁措置と称して、在日朝鮮人の人権を侵害する行為を直ちに中止すること


一、朝鮮共和国在住の原爆被爆者の援護に責任を持ち、被爆者援護法による援護を同国内から申請できる措置を速やかに講ずること


 本日は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建立三〇周年に当たります。この記念すべき集会に、早朝にもかかわらずご参集くださった皆様に心から感謝を申し上げます。


二〇〇九年八月九日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 高 實 康 稔

Monday, August 15, 2011

高實康稔: 8月9日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Takazane Yasunori: A Message for the Early Morning Gathering to Remember Korean Victims of the Atomic Bombing on Nagasaki, August 9

Here is a keynote speech by Takazane Yasunori at the gathering to remember the Korean A-bomb victims of the Nagasaki bombing held annually on the early morning of August 9. See history of this gathering in the report of the same meeting last year.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高實康稔氏は、朝鮮人被爆者、強制連行他、日本の加害に
重点を置く「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館長も務める。
 六六年前、米軍が投下した原子爆弾がこの松山の上空で炸裂し、日本人のみならず万余の朝鮮人が犠牲となりました。私たちはその死を悼み決して忘れないために、今日ここに集っています。異郷の地で、米軍の原爆攻撃に遭い、尊い命までも奪われた無念は、どれほど思いを馳せても足りません。それは単に戦争や爆撃を憎むといったものではなかったに違いありません。懐かしい故郷を後にして、はるばる長崎にまで来るに至った因果が一瞬脳裏をかすめ、許し難く思ったことでしょう。被爆者に国境はないとはいえ、朝鮮人被爆者の証言は原爆地獄の「あの日」から始まることはなく、「もう一つ、もう一つのあの日」から始まります。日本の朝鮮侵略がもたらした苦難の道が不運にも原爆地獄へと導いたからです。

 米国の原爆使用はもとより許せ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日本の侵略戦争に対する報復として正当化する意見が今なお米国内で多数を占める現実は、日本の侵略戦争と同様ナショナリズムの極みであり、空前の破壊力に加え放射線の害毒を伴う非人道的な新兵器であったことを米国民は自覚する必要があります。米国政府はこの非人道性を事前に十分認識しえたが故に批判を恐れて放射線障害の報道を抑圧したことは明らかです。平和条約によって双方が賠償請求権を放棄したとはいえ、国家といえども個人の賠償請求権を奪う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り、加えて原爆使用の国際法違反は永久に残ります。私は核兵器廃絶のためにも、せめて道義的責任の自覚を持てと米国政府と国民に訴えたい気持ちでいっぱいです。
献花のために並ぶ参列者。この早朝集会が始まったのは1979年。
最初は数十人だったが今は毎年200-400人が集まる。

 しかし、他方、日本政府が韓国・朝鮮人被爆者をはじめ、在外被爆者を援護の対象から排除してきた積年の歴史もまた許せ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在外被爆者に対する援護は三〇件を超える裁判闘争によって国側を敗訴に追い込み、少しずつ内外平等な援護へと前進してきたのに過ぎません。今なお医療費の支給に上限を設けて差別し、被爆者健康手帳の取得には証人を求める冷酷かつ最早不可能な条件を課しています。国の敗訴によって撤廃された違法な「四〇二号通達」に対する無反省の証拠といわざるをえません。植民地支配と侵略戦争に対する戦後日本の無反省・無責任な態度も被爆者問題に限らず枚挙に暇がありません。この現実を前に、「日本は原爆二発によって戦争責任を免れた」という見方さえあります。加害の歴史を顧みず、ひたすら原爆被害を強調し、被害者意識のみに立って核兵器廃絶を訴えれば、アジア諸外国の人々の共感を得ることはできません。加害責任に目をつむるエゴイズム以外の何ものでもないからです。

 私は本日のこの集会に在日韓国・朝鮮人とともに韓国からも参加してくださっていることに一つの希望を抱きます。在韓被爆者を大多数とする在外被爆者の平等な援護は、当事者の止むに止まれない要求を支援する日韓の市民の熱い連帯によって一歩一歩前進してきました。それは歴史認識を共有して差別の壁に挑戦する闘いでもありました。若い世代を含むこの連帯感をさらに強めて、日本の排外的な過去と現在を克服していければと願わずにはいられません。その一つの重大な現実として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在住の被爆者の問題があります。約二千人が当地へ帰国したとみられる被爆者は今ではおよそ四百人しか生存していないといわれていますが、世界中でこの四百人だけが援護の対象から除かれています。国交がないことは理由になりません。同国を敵視して、南北分断を助長してきたのは戦後日本政府の一貫した政策であるからです。朝鮮侵略の加害責任を果たすためにも国交正常化が急務であるとともに、その時を待つまでもなく被爆者援護を早急に実現することが被爆者援護法を遵守するための義務であるはずです。

 以上の観点に立ち、私は日本政府に対し、次の五点を強く要求します。
一、「四〇二号通達」を反省し、在外被爆者の手帳取得の条件を緩和すること
一、在外被爆者の医療費を、国内の被爆者と同様、全額支給すること
一、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在住の被爆者に被爆者援護法適用の道を開くこと
一、日朝ピョンヤン宣言に基づき、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と国交を正常化すること
一、「慰安婦」問題やBC級戦犯問題など、未解決の問題に誠実に対処すること

 東日本大震災から五ヵ月になろうとしています。私はこの間の報道をめぐっても、歴史認識の浅さを思わずにはいられませんでした。日本軍「慰安婦」問題の解決を求めてソウルの日本大使館前で九五〇回以上も続く「水曜デモ」が、大震災の犠牲者を悼んで急遽「沈黙デモ」に変更されたことをハルモニたちの深い人間愛に沿って告げる記事にはついぞ接しませんでした。また、在日韓国・朝鮮人も生命と財産の甚大な被害に見舞われましたが、様々な角度から被災・救援・復旧・復興の現状と問題点が報道されたのにもかかわらず、在日韓国・朝鮮人の被災、東北朝鮮初中級学校の校舎全壊や福島朝鮮初中級学校生徒の新潟移動、日本人被災者への救援炊き出しなどはほとんど報道されませんでした。高校無償化政策からの朝鮮高級学校排除に象徴されるように、日本の社会における人権感覚の未熟さと民族差別の根深さを痛感する思いでした。

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の事故は明らかに人災でした。「安全神話」を鼓吹した人々の罪は重く、究極的に制御不能な原発からの脱却こそは、世界三〇数カ国に在住する被爆者の切なる願いであり、再び被爆者をつくらないために原発の廃止をここに強く訴えて、メッセージを閉じさせていただきます。

最後になりましたが、早朝にもかかわらず、本集会に参加してくださいました皆様に厚くお礼を申し上げます。

二〇一一年八月九日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 髙 實 康 稔

Sunday, May 07, 2017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理事長・高實康稔さんを偲ぶ Remembering Yasunori TAKAZANE, director of Oka Masaharu Memorial Nagasaki Peace Museum

尊敬する「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の高實康稔(たかざね・やすのり)理事長が4月7日亡くなったときき、4月28日、長崎を訪ねました。父方のルーツのある長崎は私にとって特別な場所でしたが、ここ10年は、アメリカン大学&立命館大学「広島・長崎平和の旅」の通訳・コーディネーターとして8月7-10日は長崎で過ごしてきました。長崎原爆の朝鮮人被爆者問題をはじめ、大日本帝国の侵略と植民支配の歴史をつづる「岡まさはる資料館」は私たちの旅の参加者50余名は毎年訪れ、広島・長崎の原爆とその被害を、大日本帝国の歴史全体の中で理解する試みをしてきました。8月9日の朝は、長崎市の式典の前に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の追悼碑の前で開く「早朝集会」では高實氏はいつも入念に用意したスピーチを行い、その内容はこのブログでも紹介してきました(昨年のものはここ)。今回長崎新聞に対して話した問題意識も、高實さんと「岡まさはる資料館」から学んだことがあればこそのことです。長崎を訪れる人は、長崎駅から歩いていける、有名な「二十六聖人殉教地」のすぐ近くにある「岡まさはる資料館」をぜひ訪れてください。2013年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が訪れその重要性を実感、「東京にこそこのような資料館があるべきだ」と言っています。5月7日には、高實さんとの「お別れの会」が長崎市内で開かれ、250人の人が集まったときいています。そこで読まれたストーン監督のメッセージは
私達の長崎の歴史家が逝ってしまったことを聞いて悲しく思います。高實さんは素晴らしい方で、私達全員にとって手本となる人でした。謙虚な方であったことを記憶しており、私たちが岡まさはる資料館に行ったことを高實さんが高く評価してくれたことを聞いて光栄に思います。 -オリバー・ストーン
以下、5月6日の長崎新聞に掲載された私のインタビューを長崎新聞の許可を得て転載します。


Tuesday, April 21, 2009

Japan's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Are Unfairly Targeted at Korean People in Japan

This article was written by Dr. Yasunori Takazane, Director of Oka Masaharu Memorial Peace Museum in Nagasaki, to criticize the Japanese Government's sanctions against 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aying many of those are targeted against Koreans living in Japan who are not responsible for the nuclear and missile program or the abduction of Japanese citizens.

在日朝鮮人の人権を侵害する制裁は許されない
高 實 康 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が人工衛星発射と宣言して行った発射(4月5日)に対して、日本政府は4月10日、ミサイル発射と決め付けて下記の制裁を実施すると閣議決定した。
① これまで半年ごとに延長してきた現行制裁の期間を1年に延ばす
② 北朝鮮への送金報告義務額を現行の3千万円超から1千万円超に引き下げ
③ 北朝鮮への渡航者が持ち出す際の届出額を現在の百万円超から30万円超に引き下げ
これらは自民党拉致問題対策特命委員会が4月7日、政府に対して実施を申し入れていた6項目のうちの3項目で、同委員会はさらに「全品目の輸出を全面禁止」、「対北朝鮮輸出入制限などに違反した外国人船員の上陸や、北朝鮮に渡航した在日外国人の再入国を原則禁止」、「朝鮮総連や関連団体施設の固定資産税を減免しないよう自治体への指導を強化」を求めていた。政府が3項目に絞ったのは一見緩やかな制裁にとどめたかにみえるが、実はそうではなく、除かれた項目は効果が薄いかまたは既に実施されている制裁の強化にすぎないからである。すなわち、輸出は昨年8億円弱にまで減少しており、固定資産税の減免拒否も全国的に拡大しつつあり、永住権を持つ在日朝鮮人の再入国も既に厳しく制限されているからである。要するに、上記①の現行の制裁を強化延長することにこそ最大の狙いがあるのである。

現行の制裁は2006年の核実験を契機に実施されたのであるが、それは事実上在日朝鮮人に対する人権侵害でしかなく、その実態はまさに迫害といわざるをえないものである。
①北朝鮮との往来船である「マンギョンボンー92号」をはじめ、北朝鮮籍船の入港禁止
②従来「数次」再入国許可の即日交付を原則「1回限り」に制限
③総務省が通達により、朝鮮総連関連施設に対する固定資産税減免措置の取消を指導
④全品目の輸入禁止

これら現行の制裁事項のうち、④以外はすべて在日朝鮮人を対象とするものであり、祖国往来の自由を妨害するとともに、地域住民との親善交流の場でもある会館の維持運営を阻害して、彼らをいかに苦しめているかは推して知るべしである。加えて、この制裁に乗じて、朝鮮学校児童への暴行・暴言事件や朝鮮総連の中央本部および各地の関連施設への威嚇、放火、破壊等のテロ行為が頻発し、在日朝鮮人芸術家による「金剛山歌劇団」の公演妨害や自治体後援の取消も続出したことは記憶に新しい。政府がこれらの違法行為や不当な行為に適切に対処しなかったことも由々しき問題である。今回の制裁延長によって、こうした事態がさらに続くことは国内的にも国際的にも到底許されないことである。拉致問題にせよ核問題にせよ、在日朝鮮人の責任に帰すべき問題ではないからである。ここには、米国やカナダが戦時中日系人を強制収容した人権侵害行為を彷彿させる類似の構造が隠されているといって過言ではない。日本政府は自国の住民である外国人の人権を内外人平等の原則にしたがって保障する義務を公然と逸脱している。

国際人権規約に違反するこうした理不尽な制裁は、戦後一貫した在日朝鮮人差別と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に対する敵視政策の延長線上にあることも指摘しなければならない。朝鮮学校に対する抑圧(各種学校にとどめ、国費助成の対象外)、外国人登録証の常時携帯義務と重罰規定、高齢の無年金者の放置(1979年の国際人権規約批准に伴う国内法改正まで国民年金加入資格を剥奪)、移動の自由侵害(再入国許可制度と出入国時の過剰な荷物検査や執拗な質問など)、過剰捜査(朝鮮学校や朝鮮総連関係者に対する不当な嫌疑による度重なる過剰捜査)など、露骨な民族差別は今なお続いている。また、この状況に無頓着もしくは肯定的な態度をとっている多数の日本国民にも責任があることはいうまでもない。その人権意識の向上が強く求められるところである。

(2009年4月16日記、NPO法人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理事長)

Monday, May 14, 2018

「天皇の呪縛」を解いたきっかけ - 高實康稔さん追悼集 『ゆるぎない歴史認識を』より Collection of Essays to Remember Yasunori Takazane


このブログでは何度も紹介してきましたが、「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の理事長で、昨年4月7日に亡くなった高實康稔長崎大学名誉教授(フランス文学)の一周忌を記念する追悼集会に先月、行ってきました。この集会に合わせて出された追悼集『ゆるぎない歴史認識を』(写真)に寄稿した小文(72-73ページ)を紹介します。



「天皇の呪縛」を解いたきっかけ


 いま、2016年10月23日にいただいたものが最後となった、高實さんとのメールのやり取りを見直しているところです。メールをするたびに、申しわけないと思うほど丁寧で心のこもったお返事をくださいました。きっとそう思っていた人は私だけではないはずです。私はきょう、この文集のスペースをお借りして、本当に届くと自らに言い聞かせながら、高實さんに「最後のメール」を送りたいと思います。

 10年余にわたり、アメリカン大学と立命館大学合同の「広島・長崎学習の旅」に主に通訳として参加してきましたが、その旅の一環として2007年に初めて「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と出会い、8月9日の早朝集会にも参加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振り返れば、資料館と、毎年8月9日の「メッセージ」と、高實さんとのメールのやり取りから学んだことが今の自分の生き方と活動の基礎となったと言えると思います。

 特に恥ずかしさと共に思い出に残っているのは、2009年の7月17日にいただいたメールでした。約10年間の交流の中で、高實さんに苦言をもらったのは後にも先にもこのときだけだったと思います。明仁・美智子夫妻がカナダを訪れるときに、アジア系の仲間たちと一緒に「公開書簡」を出しました。それは、天皇による戦争被害者に対する一連の「慰霊」行為を評価し、日本の侵略戦争の被害者に正義と癒しがもたらされることの必要性を訴え、9条を守る平和運動への支持を求めるものでした。

 高實さんは、「天皇制が犯した言語を絶する惨い戦争犯罪」の被害者に関心を持たせるとの意図には賛同しつつも、実質的にはこの書簡が、天皇に戦後憲法上許されない「権威」を与えてしまっていることを気づかせてくれました。「外国訪問自体、一つの政治行為である」と指摘し、現在も天皇が現実的に持つ、「象徴」では言い表せない「『権威』の根深さ」や、「日本の社会に深く息づく、天皇制のもつ恐るべき下地」を考えると、「支持」や「理解」を天皇に求めるような行為は「慎重のうえにも慎重であるべき」と言われました。

 当時、私自身が高實さんの指摘される「天皇制の見えざる呪縛」の中にいたのです。振り返れば、そこを起点として私は「呪縛」から自己を解放するプロセスを開始したと思います。今その時の書簡を読み返すと穴があったら入りたいとさえ思いますから!昨今、「護憲派」とされる日本の識者たちが次々と天皇賛美に走る姿は、あの頃の自分と重なります。だからこそあのとき厳しく軌道修正のきっかけを与えてくれた高實さんに感謝しています。

 このときのお礼をいつか高實さんに伝えたいと思っていました。今、「わかってくれてよかったです」と微笑む高實さんのお顔が目に浮かびます。2016年の8月9日11時2分前後は、私は長崎市の公式の式典を避け、朝鮮人被爆者を記憶する岡資料館にいました。高實さんには特別展示「弾圧に抵抗し、戦争に反対した人たち」の説明をしてもらいました。あの時、スタッフ以外誰もいない資料館で、高實さんと一対一で静かに過ごした時間が、どれだけ貴重なものだったか、翌年4月に、知ることになりました。

 「最後のメール」、読んでくだ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高實さんから教わったことを胸に一歩一歩進んでいきます。

乗松聡子
(カナダ・バンクーバー市)

高實さんの追悼文集を希望する人は岡まさはる資料館に連絡してくださ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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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24, 2016

長崎原爆朝鮮人被爆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高實康稔 Remembering Korean Victims of Atomic Bombs: Yasunori Takazane's Speech in Nagasaki

今年も「原爆投下」を記憶する広島と長崎の日が終わった。 今年は思うところがあって市の公式の式典には行かなかった。日本を戦争に導こうとする好戦的政治家が「核廃絶」などと心にもないことを述べる場にいるのは虫唾が走る。何より今年は、この10年、朝鮮人被爆者を無視・軽視する式典に平気で出られていた自分を恥じる機会があった。今年は、日本人として、朝鮮人被爆を招いた日本の植民支配と侵略戦争に対し謝罪と反省の気持ちをこめて、朝鮮人被爆を記憶する場所で8月6日の午前8時15分と8月9日の午前11時2分を迎えることにした。8月6日の朝は、「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の前にいたら、朝日新聞の記者に取材を受け、なぜそこにいるのかと聞かれたので上記のような思いのたけを伝えた。記者は熱心に話を聞いていたが結局記事になることはなかった。8月9日は毎年長崎の朝鮮人被爆者追悼碑の前で行われている「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 早朝集会」に出た。「黙祷」のかわりに「沈黙」という言葉を使うなど、宗教色を排した進行に感銘を受けた。今年もこの集会で「メッセージ」を述べた高實康稔氏のスピーチテクストを、許可をもらって転載する。@PeacePhilosophy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米軍がこの長崎の街にブルトニューム原子爆弾を投下したあの日から七一年目の朝を迎えました。私たちは朝鮮人原爆犠牲者に思いを馳せて追悼碑の前に集っています。どれほど無念であったことでしょう。この追悼碑は牧師で市議会議員でもあった岡正治先生の尽力によって一九七九年八月九日に建立されましたが、「無論、このささやかな追悼碑の建設によって、かつて日本帝国主義が、朝鮮を武力で威嚇し植民地化し、その民族を強制連行し、これを虐待酷使し、強制労働に従事させ、遂にはあの悲惨な原爆死に至らしめた戦争責任は決して消滅するものではない」、「さらにこの地上から核兵器が絶滅されるように積極的に行動する決意を新たにするものである」と述べられた建立式式辞をあらためて思い起こします。以来三七年、日本の戦争責任を追及するとともに核兵器の廃絶を願った岡先生のこの思いはどれほど達成されたでしょうか。

 九死に一生を得て帰国した韓国・朝鮮人被爆者の援護にしても、日本政府は国内被爆者との平等な待遇を拒み続け、在韓被爆者の積年の裁判闘争によって、不完全ながら被爆者援護法の適用が実現したのは二〇〇三年のことでしたし、医療費の平等支給が最高裁判決によって実現したのは戦後七〇年を過ぎた昨年九月のことでした。しかも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被爆者は未だに何の援護も受けられず完全に見捨てられています。加えて、被爆者健康手帳の取得に証人もしくは証拠資料を求め続け、本人の証言がどれほど信憑性が高くても、手帳の交付申請を却下する事例が跡を絶ちません。韓国の政府機関である強制動員被害調査委員会が動員と原爆被爆を認定していても何ら考慮されません。時の壁のみならず、日本の戦争責任という朝鮮人被爆者の歴史的背景を無視した暴挙といわざるを得ません。因みに申請者の証言数例が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発行の『原爆と朝鮮人』第7集にあります。

 非人道的な兵器として核兵器の廃絶を訴える国際世論は高まりつつありますが、核兵器保有国の反対のみならず、日本政府もこの国際世論に背を向けて米国の核の傘に依存し、核先制不使用宣言の検討にさえ異議を唱えました。被爆国日本に対する内外の批判と失望はもとより避けられません。本年五月二七日、米国のオバマ大統領が広島を訪問して長文の所感を表明しましたが、原爆投下に対する謝罪はなく、「核兵器のない世界を目指す勇気」を表明したのみで具体的な対策が示されなかったことは衆目の一致するところです。「落胆した」という率直な感想が内外の被爆者から寄せられました。また、オバマ大統領は日本人被爆者と会い抱擁しましたが、そこには韓国人被爆者の姿はありませんでした。「現地を訪問した韓国人被爆者たちは、オバマ大統領が『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を訪問しなかったことについて、残念な気持ちを隠せなかった」とハンキョレ新聞は速報で伝えるとともに、「韓国人被爆者に言及したのは不幸中の幸い」としつつも、「今日のオバマ大統領の訪問式典に韓国人被爆者は一人も入れなかった。今朝、あまりにも悔しいので広島市長に電話して、なぜ入れてくれないのかと抗議した」という広島での被爆者の声を報じています。「韓国人被爆者が一人も入れなかった」のは、広島市長の独断ではなく日本政府が「入れさせなかった」からに違いありません。韓国原爆被害者協会がオバマ大統領に「慰霊碑への献花」を事前に要請していただけに、日本政府はこれをも阻止した疑いがあります。韓国政府も同様の要望を「外交チャンネルを通じて米国政府側に伝えた」(同紙)とのことですが、韓国からの要請の有無にかかわらず、三万人もの朝鮮人が広島原爆の犠牲となったそもそもの原因を思えば、安倍首相こそはオバマ大統領と共に「韓国人原爆犠牲者慰霊碑」に赴いて謝罪すべきであったと確信します。それは一昨年八月に長崎を訪問した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が、「米国の原爆投下の失敗は無差別大量虐殺の国際法違反というだけではなく、日本国民に被害者意識を植えつけ、加害国日本を被害国に変貌させたことにある」と語ったことを彷彿とさせるからです。さらには、ノーベル平和賞を受賞したパグウオッシュ会議のジョゼフ・ロートブラット会長(当時)が長崎での講演(一九九五年夏)で、「マンハッタン計画は当初からソビエトが敵であり、ソビエトを打ち負かすために始められたものだということを最高責任者グローヴズ将軍から直接聞いた」、「従って、広島・長崎の破壊は第二次世界戦争の終結というよりも、冷戦の始まりを意味する」と語ったことからも明らかなように、原爆投下の目的が当初から対ソ戦略の一環であったことをオバマ大統領が知らないはずはないからです。

 以上の見地に立って、私はつぎのとおり、日本政府に要求します。

一、被爆者健康手帳の申請には最大限本人の証言を重視して対応すること

一、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の被爆者に被爆者援護法適用の道を開くこと

一、安全保障関連法を廃止し、憲法九条を厳守すること

一、日朝ピョンヤン宣言に基づき、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と国交を正常化すること

   最後になりましたが、早朝にもかかわらず、多数ご参集くださいましたことに厚く御礼を申し上げます。

  二〇一六年八月九日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 髙實康稔


2016年8月9日 早朝集会

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の裏面の文言。

朝鮮人原爆犠牲者追悼碑横の説明版。

Thursday, September 11, 2014

8月9日長崎の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高實康稔メッセージ)Yasunori TAKAZANE's Message for the Memorial Gathering for the Korean Victims of the Nagasaki Atomic Bomb, August 9

今年もアメリカン大学・立命館大学の提携プログラムにより京都・広島・長崎の10日間の平和学習の旅が実施され、日本、米国、中国、韓国、カナダ、バングラデシュ等出身の学生、研究者、教員約50名が原爆投下の歴史を学び、被爆者の体験を聞き、核兵器廃絶への道のりを学ぶと同時に「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訪問などを通して日本の侵略戦争と植民地主義の歴史について学んだ。8月9日は例年通り、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に出席、朝鮮人犠牲者の碑に花を捧げた。「岡まさはる資料館」の館長でもある高實康稔氏の集会メッセージをここに紹介する。『週刊金曜日』8月29日号「特集 ヘイトの深層 -嫌韓・民族差別と歴史修正主義」によると、全国的に朝鮮人の強制連行・強制労働や戦争被害を記憶する追悼碑が攻撃や苦情の対象になっているようで、長崎の爆心地公園内の「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碑」もその一つだという。今年の「メッセージ」はそういった風潮の中であらためて「朝鮮人の原爆被害の原因が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と強制連行・強制労働にあること」の認識と、朝鮮人だけではなく日本人も「徴用・学徒動員・挺身隊動員・報国隊動員」などの強制労働の中で被爆したということを認識する必要性を強調しているように思う。広島市や長崎市の市の公式式典で朝鮮人の被害が語られることはほとんどなく、原爆が非人道的兵器であることは間違いないが「核兵器廃絶だけを訴えるだけで足りるとは到底いえない」との問題意識を深く共有する。そして北朝鮮を含め、どこにいようとも被爆者は平等の扱いを受けるべきであるとの当然の主張に共感する。@PeacePhilosophy


2014年8月9日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


 
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メッセージ


 長崎に原子爆弾が投下されたあの日から、六九年もの歳月が流れました。私たちは長崎原爆の犠牲となった朝鮮人を悼み、この追悼碑の前に集っています。一九七九年八月九日、岡正治牧師の呼びかけによって建立されたこの碑の除幕式に集った人々はわずか四〇名足らずでした。戦後三四年経っても、朝鮮人被爆者の存在は無視されてい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朝鮮人被爆者は被爆者総数の一割にも及ぶと次第に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孫振斗裁判をはじめ、在韓被爆者の度重なる提訴や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の実態調査があったからに他なりません。日本の朝鮮植民地支配と強制連行政策の犠牲者であることを認識するにつれて、良識ある人々は胸を痛めました。しかし、被爆者援護の政策から、在韓被爆者を最大多数とする在外被爆者が排除され、今なお差別が残されているのもまた事実です。
高實康稔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の代表でもあった岡正治牧師は除幕式において、「爆死し、異郷の地で悲惨な生涯を閉じられた朝鮮人のために、その追悼碑を建立することを決意した。無論、このささやかな追悼碑の建設によって、かつて日本帝国主義が、朝鮮を武力で威嚇し植民地化し、その民族を強制連行し、これを虐待酷使し、強制労働に従事させ、遂にはあの悲惨な原爆死に至らしめた戦争責任は決して消滅するものではない。」と述べています。この認識は、本日これほど多数お集まりの皆様と深く共有されているものと信じます。

「兄は私より一年前に北海道より北のサハリンの炭坑に徴用されました。私は昭和一九年(一九四四年)、夜寝ているときにいきなりカワニナを獲るように連行されました。それは結婚して五ケ月目の時です。私は二二歳、妻は一六歳でした。」「私は造船所では四年間で何隻も船を造りました。「航空母艦」も造りました。飛行機が二階に全部載るほど大きいものです。大砲も機関銃も乗せて飛行機爆弾も乗せて、下を見下ろせば七階の高さです。組み立ての時は生死の境目に立っているようで危険です。内部は至る所に空洞があり、足を踏み外し間違って落ちれば大変なことになります。感電して死ぬ人、落ちて死ぬ人、それが限りなく出てきます。」「私はサハリンも行って、サハリンで徴用にかかって、九州ハシマにも行った。解放される前の年に妻がサハリンに入ってきて八日間だけ妻と暮らし、解放の年の四月にサハリンで娘が生まれた。解放の時、ウェノム(日本の奴)はサハリンの妻たちを韓国に必ず送ると言うので、それを信じて私たちはそのまま先に韓国に帰還した。その後サハリンとは連絡も途切れた。」

 これらの証言は、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が今春出版した『原爆と朝鮮人』第七集から引いたものですが、朝鮮人強制連行、強制労働、家族離散の真実を告発する無数の証言のごく一部分に過ぎません。しかし、これらの事実からだけでも、朝鮮人の原爆被爆の原因が日本による植民地支配と強制連行・強制労働にあることは明らかです。私たちはその歴史的因果関係を深く認識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また、これらは、韓国の政府機関である「対日抗争期強制動員被害調査及び国外強制動員犠牲者等支援委員会」が刊行している被害者の申述集『私の体に刻まれた八月』と『酷い別離』に掲載されている証言ですが、同委員会が長崎に関する部分の翻訳(要約)を『原爆と朝鮮人』第七集に掲載することを快諾してくださったからこそ、今や私たちも読むことが可能となったのです。。委員会と翻訳の点検をしてくださった許光茂先生にどれほど感謝しても足りません。ここに厚く御礼を申し上げる次第です。

 原爆が非人道的な兵器であることは論を俟ちませんが、それ故に核兵器廃絶を訴えるだけで足りるとは到底いえません。朝鮮人強制連行・強制労働に対する責任を問うのみならず、日本人の場合も被爆死の多数を占める徴用・学徒動員・挺身隊動員・報国隊動員の責任を問う必要があります。朝鮮人を酷使した三菱重工業や新日鉄住金に賠償を命じる判決が昨年7月、韓国の高等裁判所で下されたことは歴史的必然と言うことができます。一九六五年の日韓基本条約で「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済み」とする日本政府や企業の主張は人道に反するばかりではなく、個人の賠償請求権は国家たりとも奪う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戦後進歩した国際法の規範に反するものだからです。

 安倍内閣は本年七月一日、集団的自衛権の行使容認を閣議決定しました。当然ながら反対世論が噴出しています。日本国民は、朝鮮人原爆犠牲者の無念の叫びに応えるためにも、「自存自衛」などと偽る戦争を絶対に再び許してはなりません。

 以上の見地に立ち、また積年の課題を含めて、私は次のとおり日本政府に要求します。皆さんの賛同を得られれば幸いです。

一、在外被爆者に対する医療費支給を国内被爆者と平等に全額支給すること

一、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在住の被爆者に被爆者援護法適用の道を開くこと

一、個人の損害賠償請求権を認め、抜本的な戦後補償政策を確立すること

一、日朝ピョンヤン宣言に基づいて、日朝国交正常化を早期に実現すること

一、集団的自衛権行使容認は無謀かつ憲法違反であり、その閣議決定を撤回すること

 最後になりましたが、早朝にもかかわらず、本集会にご参集くださった皆様に心から感謝を申し上げ、メッセージを閉じさせていただきます。

   二〇一四年八月九日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 髙實康稔
 
追悼碑に献花する学生
 

Wednesday, October 30, 2013

「語られないアメリカ史」の作者オリバー・ストーン、「語られない日本史」を展示する資料館を訪問 (高實康稔館長による報告) Oliver Stone, coauthor of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visits museum of "Untold History of Japan" (Yasunori Takazane)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のニュースレター「西坂だより」の2013年10月1日号(第71号)に、館長高實康稔氏による、この夏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が資料館に訪れたときの報告が巻頭文として掲載されています。高實氏の許可を得てここに掲載します。当ブログ運営人の私(乗松聡子)はオリバー・ストーンとピーター・カズニック2013年の夏の来日、来沖を企画・同行しましたが、この資料館は日本の歴史記憶の中で欠けがちである日本の侵略と植民地支配の歴史、被爆都市長崎における朝鮮人被爆者の被害の記録、朝鮮人強制連行労働者たちの苦悩の記録を記しているところです。私は2007年に初めて訪れて以来会員となり、民間の寄付と入場料だけで成り立っているこの孤高の資料館を応援してきました。日本人なら誰でも一度は訪れるべき場所と思っています。「語られないアメリカ史」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という大作(ドキュメンタリー映像シリーズと本)を昨年から今年にかけて世に出した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とピーター・カズニック教授にとって、この「語られない日本史」を地道に語る資料館こそ長崎で訪問するにふさわしい場所ではないかと思って勧めました。オリバーは猛暑と多忙な日程の中で予定を調整したり体調を整えたりしながらスケジュールをこなしていましたが、この資料館の話を私から聞いたときから「ここだけは絶対行きたい」とずっと楽しみにしていました。「Oka Masaharu」という日本語の名前は覚えにくく、彼の中では Atrocity Museum (アトロシティー・ミュージアム「虐殺資料館」)という理解になっていました。訪問したのは8月10日だったのですが、8月8日に日テレの「ニュース0」の村尾キャスターとの対談を行った長崎港のターミナル近辺に長崎市の主要観光地の地図があり、それを見て私に「今度行く虐殺資料館はどこだ」と訊ねました。私は「残念ながら公共のマップにこの資料館が出ていることはまずありません」と答えざるを得ませんでした。この資料館は多くの観光客が訪れる「26聖人殉教地」のすぐ近くにあります。長崎駅から歩いて5分ほど。地図はここ。オリバーが訪問したことを長崎新聞、NHKワールド、朝日新聞などが取り上げ、オリバーもことあるごとにインタビューなどで触れているので問い合わせが増え、来訪客も増えたようです。これを読む皆さんも長崎でぜひ行って見てください。オリバーはいまだに名前がなかなか言えず、「長崎に小さいが大変重要な資料館がある」としか言わないのですが、名前は「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です。@PeacePhilosophy
 
 
8月10日、資料館にて、左から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館長の高實康稔氏、
同行・通訳を務めたピースボート共同代表の川崎哲氏。(写真は川崎氏提供)
 
 
 
評価された資料館の存在

―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が残した言葉―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理事長 髙實康稔

 

大盛況のシンポジウムにて

 本年8月8日、長崎ピースウィーク実行委員会の主催で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ピーター・カズニック教授が語る「アメリカ史から見た原爆投下の真実」というシンポジウムがありました。勤労福祉会館講堂が満席のうえに大勢の立ち見が出るほどの聴衆を前に、ストーン監督とカズニック教授(アメリカン大学)は、「原爆投下は日本を降伏させるために必要であった」とか「降伏を早めて100万人もの人命を救った」とか言う今なお根強い正当化の主張を「神話にすぎない」と断じ、ソ連に対して核兵器の脅威と軍事力の優位を見せつけることこそが最大の目的であったと、詳細な論拠を挙げて力説しました。また、日本の降伏を決定づけたのは原爆投下ではなく、ソ連の参戦であったことも指摘しました。これは決して新しい見解ではなく、歴史学の上ですでに実証されていることですが、原爆投下の誤った見方に対する強い警鐘であったといえるでしょう。長崎への原爆投下は、その照準店が都心の常盤橋であったことから、無差別爆撃によるプルトニウム原爆の破壊力テストであったことも明らかです。「日本人は戦時中の加害の真実をよく見るべきだ」というカズニック教授の要請と、「日本人は芸術性も高い民族なのに、戦時中なぜあれほど残虐になれたのか」というストーン監督の質問が印象に残りましたが、「オリバー監督が長崎で行きたがったところは、原爆の犠牲になった朝鮮人や中国人の追悼モニュメントでした。岡まさはる記念館も見たいと言っていますが、長崎市の観光マップには載っていません。」というパネリストの乗松聡子さん(バンクーバー在住、ピース・フィロソフィー・センター代表)の発言には、会場がどっと沸きました。

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が資料館を訪問!

 8月10日、ストーン監督が来館され、私が案内役を務めました。通訳はピース・ボート代表の川崎哲さんが引き受けてくださいました。ストーン監督は入館して正面の朝鮮人被爆者の展示を一瞥するや否や、緊張した面持ちでした。まず、資料館の設立の経緯と趣旨を簡潔に述べ、14歳で端島(軍艦島)に強制連行された徐正雨さんのことを象徴的な事例としてお話しし、模型の飯場で劣悪な衣食住と過酷な労働現場について説明しました。次いで1万円札の拡大カラーコピーを前に、福沢諭吉の朝鮮・中国侵略思想を読み上げると、ストーン監督は頷きながらじっと見入っていました。階段部分の展示説明では、時間の関係で大雑把にならざるを得ませんでしたが、731部隊のところで「被害者のなかに生存者はいるか」と問われましたので、私は即座に「一人もいません。撤退時に全員殺したと、元隊員から直接聞いた。」と答えました。「日本はアジアで何をしたか」の大パネルでは、フィリピンについての質問の後で、餓死寸前のヴェトナムの少女の写真に説明を求められたので、「ジュート=麻の栽培だけをさせて米を作らせなかったので200万人も餓死した」と説明すると、悲憤を噛みしめておられるようでした。2階のメイン展示場では、「慰安婦」コーナーで、広大な日本軍占領地と「慰安所」の所在地を示す地図の前でしばし立ちつくしておられましたが、日本軍の傀儡(かいらい)軍である「満州国軍」に少年義勇兵を殺害させている写真と日本兵自身が中国人を殺害して微笑んでいる写真の説明として、「戦場での日本兵は天皇制軍国主義教育によって日本を神の国と信じ、徹底的に異民族を蔑視していた」と述べると、無言のうちにも納得されたように感じました。そして、時間に追われながら、最後に常石敬一著「標的・イシイ」を示して、「米国が731部隊の戦争犯罪を免責したのは、マッカーサーとウィロビーとサンダーソンの3人が決めたことに始まる」と告げると、「イエス」と応じて深々と頷かれました。この件についても敢えて触れたのは、「731部隊罪証陳列館」と友好館提携を結んでいる資料館の使命でもあるとの思いからでしたが、『オリバー・ストーンが語るもう一つのアメリカ史』を著された方だけに十分承知しておられ、その歴史認識に改めて敬意を抱かずにはいられませんでした。

 ストーン監督が資料館を去るに当たって、長崎新聞の石田謙二記者らが感想を求めると「東京にもなければならない」と答えられ、居合わせたスタッフ一同感激しました。石田記者の記事は翌日の長崎新聞に掲載され、大きな反響を呼びました。

NHKの国際放送ニュースラインでも紹介

 私は8月12日から17日まで南京を中心に訪中しておりましたが、その間にNHKからストーン監督の資料館訪問の写真を求められ提供したことを帰国後に知りました。その写真を使ったニュースラインの映像もウェブリングで見ました。ストーン監督の訪問を報じたものとはいえ、資料館の存在を世界に紹介した意味も大きいと思います。

NHKのBS深夜放送でもストーン監督が一言

 8月25日午前0時から2時間、NHKのBS放送で「オリバー・ストーン監督がスタジオで直言―原爆×戦争×アメリカ、歴史を直視する時」という番組があり、ストーン監督とカズニック教授が大学教授や学生、市民と対話しました。『プラトーン』を初め、ストーン監督の作品を織り込みながら、じっくり語り合う啓発に富んだ番組でしたが、その最後の場面でストーン監督が「長崎には日本の加害責任を問う民間の歴史資料館があった。あまりお金はないようだったが。東京では無理なのだろうか。」とさりげなく語られ、資料館訪問の印象が悪くなかったことに安堵するとともに、資料館の存在を評価してくださったことに感激一入でした。また、番組(録画)を見終わって、設立18年にして今やストーン監督に評価されるに至った資料館も岡先生の発意がなければ存在しないことをふと思い、今後ともその先見の明を肝に銘じて維持していくことを心に誓いました。

(たかざね・やすのり)
 
 
熱心に説明をきくオリバー。(写真は川崎哲氏提供)
 

Wednesday, September 06, 2017

髙實理事長への追悼の言葉:園田尚弘(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理事長)Remembering Takazane Yasunori: Sonoda Naohiro, Director of Oka Masaru Memorial Nagasaki Peace Museum

今年4月7日に亡くなった「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高實康稔理事長にかわり、新理事長となった園田尚弘さんによる高實さんへの追悼文をここに紹介します。資料館のニュースレター「西坂だより」第86号(2017年7月1日)に掲載されました。末尾の関連投稿とあわせてお読みください。

2013年8月9日、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早朝集会にて話す高實康稔氏。


髙實理事長への追悼の言葉

2017年5月10日 

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理事長
園田尚弘

あなた方が私を探す時には、あなた方の心の中に私を探してください
そこに私が一つの場所を見つけたならば、私はいつもあなた方のもとにいるでしょう。
         アントワーヌ・ド・サン=テクジュペリ

 私たちの敬愛する友人、岡まさはる記念長崎平和資料館(以下では平和資料館と略記)理事長の髙實康稔さんが亡くなりました。
2017年4月7日、心不全のため77年の生涯を終えました。死に顔は穏やかで、微笑が浮かんでいるようであったそうです。
 2016年11月髙實さんは肺炎ということで入院しました。その後退院、入院を繰り返しながら、療養に努めていましたが、17年4月初めに入院した後、意識が失われ、その後意識を取り戻すことなく、他界しました。
 葬儀は家族葬で行われました。その後髙實さんが関わっていた市民運動の友人たちの呼びかけで「髙實康稔さんとのお別れの会」が計画され、5月7日に長崎県総合福祉センターで行われました。しめやかな雰囲気のなかで、しかも盛大に催されました。

* * * * * *
      
 髙實理事長は若い時からさまざまの社会活動や平和運動にかかわっていました。それゆえ多くの人は理事長の一部しかご存じないと思われます。そこで限られた視点からではありますが、簡単にその活動の一端を紹介させていただきます。

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での活動
 髙實さんは1969年長崎大学教養部にフランス語担当教員として赴任しました。長崎大学のなかでも大学生協の理事長を務めました。
1971年から1972年のフランス留学から帰国した後、1976年から「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との関わりを活発にし、大村収容所などにでかけ、収容された韓国人などの救援活動を行いました。1979年より長崎市議で「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代表であった岡正治牧師等とともに精力的に被爆朝鮮人の実態調査に乗り出しました。その成果は『原爆と朝鮮人第1~7集』、『朝鮮人被爆者』(社会評論社1989年)などとして出版されました。朝鮮人被爆者の掘り起こしは死去するまで続けられていました。1979年には「長崎原爆朝鮮人犠牲者追悼碑」が「長崎在日朝鮮人の人権を守る会」の主導で爆心地公園に設置されました。追悼碑の前で毎年8月9日早朝に行われる長崎原爆朝鮮人被爆者追悼集会を髙實さんはとても大切に考え、毎年、心をこめて書かれた格調高いメッセージを発表してきました。

教育通信・言論の自由を求める会での活動
 教育の面でも活動しました。学級通信、通知表問題を契機に「長崎の教育通信」の発行に関わり、後には代表になり、鋭い批評精神に富んだ巻頭言をたくさん書きました。教育のかかわりでは学校に居場所を感じられない生徒たちのための空間「リベルテ」の設立につながりました。
 忘れることができない活動は、故本島等市長が天皇に戦争責任があると長崎市議会で発言したことを擁護する活動でした。市長発言は右翼勢力の反発を呼び、右翼の街宣車が市中を走り回る状態になりましたが、平和活動家として髙實さんが終生尊敬していた岩松繁俊さんたちとともに市長発言を擁護しました。後に市長銃撃事件に際しても積極的に活動、銃撃を批判し、「言論の自由を求める長崎市民の会」の名のもとに一千人集会とデモを実現しました。

在外被爆者支援連絡会での活動
 韓国人被爆者の訴訟支援活動も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在外被爆者の支援活動でリーダー的役割を果たしてきた平野伸人さんらとともに、金順吉裁判、李康寧裁判、等を支援し、日本政府の被爆行政の差別性を批判してきました。在外被爆者に対する不当な差別をなくしていったのは何人もの在外被爆者の裁判闘争によるものだったと、髙實さんは繰り返し強調していました。「在外被爆者支援連絡会」の共同代表を努めていました。亡くなる数か月前まで、被爆者手帳の交付を求めながら、証人がいないということで交付を拒否されていた三人の韓国人被爆者(金成洙さん、裴漢燮さん、李寛模さん)のことを幾度も語り、気にかけていました。病気がよくなったら、支援活動にとりかかろうと考えていたことでしょう。
 髙實さんは自分の周りの韓国、朝鮮人被爆者のひとりひとりの生活の世話も親身になって手助けしました。アパートの保証人になったり、その子どもさんとの付き合いも欠かすことがありませんでした。

中国人強制連行裁判関係での活動
 強制連行された中国人たちの裁判支援活動も忘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アジア太平洋戦争末期に日本政府は労働力不足を補うために、約4万人の中国人を強制連行して、国内の危険な労働現場で働かせました。髙實さんたちは中国に何度も足を運び、とくに三菱の炭鉱で強制労働に従事させられた元労働者の老人たちを助けて、長崎で裁判を闘う手助けをしました。「長崎の中国人強制連行裁判を支援する会」の共同代表でした。これらの活動は2016年の三菱マテリアルとの和解につながったと評価されてもよいと思われます。平和公園の一角には強制連行され、浦上刑務所に収容されていて被爆死した中国人犠牲者を追悼する碑が建てられています。これの維持管理をになう「浦上刑務支所中国人原爆犠牲者追悼碑維持管理委員会」の共同代表でもありました。
 日本の侵略戦争による中国人犠牲者の数は数千万人に上りますが、中国各地にはこの日本軍の蛮行を記憶しておくための記念館があります。髙實さんが中心となって、平和資料館はこれらのいくつかの施設と友好提携の関係を結んでいます。それは南京の「南京大虐殺記念館」、上海の「慰安婦」資料館、ハルピンの「七三一罪証陳列館」です。
 南京からは毎年、大虐殺を経験した生存者たちを証言のために長崎に招く活動を続けてきましたが、髙實さんは一人一人の老いた幸存者を手厚く遇し、証言者たちが気後れしないように配慮していました。自分でも毎年のように南京を訪問し、日本軍の起こした虐殺現場のフィールドワークに参加していました。

「慰安婦」問題に関して
 現在、日韓政府の間では、2015年末の「慰安婦」問題に関する合意についてもめていますが、この問題に関しては一貫して日本政府の態度を批判してきました。
 この問題も資料館が取り組まなければ問題として、髙實さんは率先して韓国に赴き、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を事務所に訪ね、代表であった尹貞玉さんを長崎に招き、講演会を組織し、長崎市民に広く問題を知らせました。アジア女性基金の立場にも一貫して批判的でした。2015年末に発表された日韓合意に対しても、当事者の意見を無視した政府間の合意だとして、一貫して反対していました。

*

 以上主として社会的活動に焦点をしぼって述べてきましたが、次には学者、教育者としての髙實さんの学問上の仕事を紹介しておきます。
 私は教育者としての髙實さんを高く評価するものの一人です。篤実で熱心な講義のスタイルは、若い学生に対して時間を惜しむことなく、アジアの地における日本の加害の歴史を教える態度にもそのままつながっていました。
 髙實さんは2005年に長崎大学を定年退職しましたが、その間、教養部、環境科学部でフランス語、異文化交流論などの講義を担当しました。環境科学部では評議委員にも選出されました。
 専門研究としてはフランス17世紀のモラリスト文学(とくにラ・ラシューフコー)、フランス・レジスタンス文学(とくにサン=テクジュペリ)、コロニアリズム、ポストコロニアリズム研究(とくに近代日本)で大きな業績を上げました。
 翻訳に『世界のひとへ』(共訳)、リンデン伯著『日本の思い出』などがあります。『世界のひとへ』は朝鮮人被爆者の存在を世界に紹介したもので、また『日本の思い出』は、その訳文の流暢さで,識者に高く評価されました。
 2006年にはフランス語教育、フランス文学研究、さらに朝鮮人被爆者の実態調査が高く評価され、フランス政府より、パルム・アカデミック勲章(教育功労賞)が授与されました。

     * * * * * *

 学術上の業績に次いで、この勲章の件で、思い出したことを記して次にはわたしの目に映った髙實さんの人柄の一端を紹介させていただきます。
 日本政府が勲章をくれるといっても、髙實さんが拒絶したであろうことを私は確信しています。フランス政府が勲章を授与すると知らせてきたとき髙實さんは、考え込んでいました。大喜びで叙勲を喜ぶ人が多い中、髙實さんは自分の活動は勲章で表彰される性質のものではない、という思いがあったからでしょう。私にもどう思うかという問いがありました。謙虚な人柄でした。
 物静かな口調で話すのが常でしたが、平和活動への固い決意は、例えば次のようなきっぱりとしたことばとして表現されました。平和資料館は、2010年にドイツ政府が徴兵制度の中止を決定するまで、2011年まで毎年、兵役拒否をしたドイツの若者たちに代替の役務を提供していました。受け入れのための宿泊費、食事代、毎月の小遣いなど、諸費用は必ずしも安くはありませんでした。私がそのことを知らせたとき、髙實さんは、これらの青年を受け入れなければ、平和資料館を作った意味がない、と決然とした口調で受け入れを表明しました。
 他人を寛容に受け入れ、活動するひとたちの背中を押して、励ましてくれる人でした。平和を作り出していく活動を支えていくという決意と、模範的な人柄にたいする尊敬の念を抱く人たちは国内だけでなく、外国人にも多く、こんにち平和資料館は国際的にも名前を知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岡正治さんの構想を実現、発展させた功績に感謝の念をささげると同時に、私たちはその思いをともどもに引き継いでいきたいものです。
 

園田尚弘(そのだ・なおひろ)
長崎大学名誉教授、ドイツ文学、ドイツ社会思想。著書に『環境と文化』 (共著)などがある。平和資料館には1995年の開設以来参加。1944年生ま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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